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마치신후,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유대지경에 이르셨습니다. 그리스도로써 십자가의 죽으심을 향해 고난받고 죽임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날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의 가까이에 있는 유대지경에 이르신 것이죠. 이때, 큰 무리가 따르자,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가 있는 반면에, 바리새인은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겁니다.
여기서,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곳으로 그들을 살리시려고 요나의 표적밖에 없음을 천명하고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노중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며 가고계십니다. 예수님 앞에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부류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고, 한 부류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부류여야 합니까? 예수님을 시험하는 부부가 되지말고,
1. “예수님을 따르는 부부”여야 합니다.
소위 ‘내 코가 석자’인데,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상황인데도, 부부가 배우자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것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며 나아가는 삶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부부입니다.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2. 부부는 “새로운 창조물”로 이해해야 합니다.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여기에 창조원리로 합하여 한 몸되는 깊은 원리가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색깔만 나와서는 안되고, 합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7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