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의 위력 (4/19)
본문 : 야고보서 3장 1절 ~ 12절
요약 : 안순자 자매
설교 : 남기홍 목사
아기가 총을 들고 있다면 얼마나 위험할까요. 아기 손에 들려진 총처럼 위험한 것이 사람의 지체 안에 있습니다. 바로 입안의 혀입니다. 혀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습니다. 총으로 맞았다 하더라도 수술을 하면 나을 수 있지만, 혀로 인한 상처는 내면에 깊이 생겨서 좀처럼 치유되기가 힘듭니다. “입술에서 30초가 인생에서 30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깊은 내면의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심장이 뛸 만큼 힘든 그런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으면 잠깐 그 사건을 떠올려 봅시다. 대부분은 혀 때문에 생긴 상처일 것입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싸로 살지만 한국에서 어릴 때 받았던 상처로 인해 아직도 힘들어합니다. 이 분은 어린 시절 너무나 가난하였지만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마침내 서울대에 합격하였지만, 입학금이 없어서 친척을 찾아갔습니다. 그 집 딸이 “쟤는 왜 거지처럼 왜 맨날 우리집에 와 있어.”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사업가는 어찌할 바 모르며 그 집을 뛰쳐 나왔습니다. 그 한마디가 너무나 상처로 남아 성공해서 잘살고 있는 지금도 그 상황만 생각하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의 파괴력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가 힘든데 내가 죄가 있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 합니다. 왜 죄가 없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내가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기를 친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답합니다. 이 사람들은 혀의 죄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우리는 날마다 혀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혀를 조심하지 못할까요? 혀가 작은 지체이기 때문에, 혀의 괴력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3절에서 굉장히 힘센 말도 재갈을 물리면 그 하나로 말을 부릴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4절에도 배가 아무리 커도 작은 키로 조종한다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5절에서도 큰 파괴도 작은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가 말 한마디로 다툼이 생기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그만 불꽃 하나가 산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작은 지체인 혀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혀를 잘 간수하고 다스릴 수 있을까요? 야고보는 몇 가지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혀는 길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직한 후보’라는 영화도 말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7절에서 혀는 길들일 수 없으므로 혀가 실수할 기회를 줄여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위 있는 위치에 있으면 실수할 기회가 많으므로 권위 있는 위치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혀나 내 혀나 길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남이 함부로 말을 해도 너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혀를 잘 다스리려면 내 인격을 다스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인격을 바꾸는 것은 내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이 내 속사람을 변화시켜 주셔야 가능합니다. 인간적인 노력도 의미가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말로는 정중하게 하지만 비언어인 눈빛이나 행동에서 화를 뿜어내는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언젠가는 화나는 마음이 무엇으로든 표출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내 마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내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혀를 긍정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주님께 하루를 맡기는 그런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다 보니 사랑이 따라오는 것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먼저 “용서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용서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용서하는 마음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혀가 배의 키처럼 우리의 말을 주관하는 원리입니다.
요즘 무슨 말을 하면서 살고 계신가요? 하늘의 말인가요, 세상의 말인가요? 칭찬하는 말인가요, 비난하는 말인가요? “저는 이제부터 긍정적인 말만 하고 살겠습니다.” 하고 결단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