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본글은 최영기 목사님의 글을 조금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오래 전 얘기입니다. 미국에 있는 한 도시, 제법 큰 교회 창립 목사가 은퇴하고, 젊은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했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가정교회를 접하게 되면서 마음이 뜨거워져서, 2년간 치밀하게 전환을 준비하고 가정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러나 출범 후 얼마 안 있어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섬김과 희생을 주저하는 교인들도 문제였지만, 막후에서 장로들을 부추겨 가정교회에 제동을 거는 원로 목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로 목사는 전통적인 목회를 했고, 교단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후임 목사가 자신이 시키는 대로 목회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젊은 목사가 가정교회 원칙을 내세우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까 가정교회에 반감을 갖게 되고 마침내는 적대적으로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초청을 받아 제가 부흥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부흥집회 마지막 날 주일, 설교하기 위해 단위에 서니까 맨 앞 자리에 앉아있는 원로 목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원로 목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끝내면서 헌신 초청을 했을 때 많은 교인들이 일어나서 헌신을 약속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감명을 받아 원로 목사가 가정교회 뿐만이 아니라 저에게도 호감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출구에 서서 퇴장하는 교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원로 목사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수고 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기대했는데 의외의 말을 하였습니다. “최 목사님은 왜 강단에서 거짓말을 합니까?”
어안이 벙벙해서 나중에 후임 목사에게 물어보니, 내가 설교 중에 후임 목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말한 것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나는 젊은 목사를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고, 집회를 인도하기 전에는 집회 초청 관계로 이메일을 두세 번 주고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원로 목사는, 후임 목사가 자신의 말을 안 듣는 이유가 제가 뒤에서 사주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후임 목사와 제가 수시로 의견을 나누었을 텐데, 잘 모른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라고 따질 때 어조와 눈빛을 보아, 원로 목사는 제가 무척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후임 목사를 잘 모른다는 말 하나만 귀에 들어와 꽂혔던 것입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를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지 않는구나! 아무리 성실하게 사역을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구나!
이를 계기로,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게 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열심히 설교하고, 좀 더 성실히 사역하고, 좀 더 섬겨 주면,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해 주리라는 기대를 접기로 하였습니다. 오해가 생기는 경우에도 한 번은 설명은 하지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싫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슨 설명을 해도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 돕지만, 나를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는 포기했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고 나니까,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운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입장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교사가 말씀을 전하는데, 이 선교사는 평소에 제가 마음에 안들어 했던 사람입니다. 이 선교사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고, 헌신 초청에 많은 사람들이 응했습니다. 그런데 내 가슴은 얼음처럼 냉랭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 경험했던 원로 목사와 똑같은 반응을 제가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싫다”는 느낌은 감정이기 때문에 의지력으로 극복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마음 뿐인데, 이런 마음도 인간의 노력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엡 4:26-27).” 밉거나 싫은 사람이 있을 때 악마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같이 사역하는 동역자가 마음에 안 들을 때에는, 감정에 지배 받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대부터 하고 싶은 충동을 물리치고, 동역하는 사역에서 물러나고 싶은 유혹을 경계하며, 오로지 사역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감정을 무시하고 사역에 초점을 맞추니까, 신기하게도 싫었던 감정이 점점 사라지고 얼마 안 있어 싫었던 사람이 귀한 동역자로 느껴지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샬롬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