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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터 - [딸을 잃은 목녀에 대한 공동체의 역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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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원에 올라온 글입니다.

글쓴이는 신림동의 한우리 교회 정태원 목사님(지역목자)입니다.

참고가 될 것 같아서 ----

 

 

공동체를 통해 딸을 잃은 가족에게 주신 위로

 

지난 5월 25일 한우리 교회에서 목녀와 찬양인도로 충성하는 한 자매의 중딸이 자기 집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딸은 우울증으로 1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날 목녀는 딸이 수업을 받기가 힘들어 자퇴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학교로 가서 딸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목녀는 하던 일이 있어 일을 하러 갔는데 중간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집에 있는 오빠인 아들에게 동생을 확인해 보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들이 동생의 방으로 가보니 핸드폰은 침대 위에 놓여있고 창문이 열려있어 내려다보니 이미 투신한

뒤였습니다저의 딸 한나가 현장에 도착하니 바닥에는 온통 피가 튀어 있었고 목녀는 숨을 쉬지 않는

딸을 살리려 입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는데 딸의 입에서 솟아난 피로 얼굴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은 119 구급차가 도착하여 아이를 싣고 목녀와 딸이 함께 갔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제주도 컨퍼런스에 가기 위해 김포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다가 연락을 받고 탑승을 취소하고 짐을 찾아 현장으로 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경찰이 물로 핏자국을 대충 지우고 떠났고저는 계속 물을 떠다 가족들이 나중에라도

돌아와 보고 충격을 받지 않도록 꼼꼼하게 작은 핏자국 하나라도 일일이 지웠습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아이의 시신은 영안실에 두었고 목녀는 거의 실신 상태에서 눈을 뜨지 못한 채 누워 신음하고 있었으며 다른 목녀들이 도착하여 손을 잡고 함께 흐느끼고 몸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슬픔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원의 기도실을 찾아 그곳에서 모여 첫 위로예배를 드렸습니다.

 

목녀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알고 있었기에 딸의 육신적인 죽음에 대한

슬픔에 더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것을 더욱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아이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당할 수 없는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려

죽은 것이며 딸은 예수님을 영접했고 주님을 사랑하는 아이였기에 천국에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암에 걸린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있지만 병이 목숨을 빼앗아 가듯이 이 아이도 우울증이라는

영혼의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과정이야 어떠하든지 주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인간의 눈에는 참혹했지만 우리의 구원이 되었듯이 딸의 죽음의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안타깝지만 주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셨으니 앞으로도 그 장면을 절대 마음에 두지 말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딸은 세상에서는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려 늘 고통을 당했지만 지금은 눈물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 가운데 있으며 우리는 아이를 볼 수 없지만 아이는 우리를 늘 보고 기도할 것이라고

위로를 했습니다.

천국에서는 하루가 이 땅에서의 천년과 같기에 딸이 천국에서 몇 십분 주위를 둘러보고 나면

세상에서는 벌써 30-40년이 지나 금방 만나게 된다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험이 있는 목사님께 알아보니 이런 경우에는 부고도 하지 말고 삼일장도 필요 없이 바로

장례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입관 예배에서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오라비의 죽음에 대해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한 말씀을 통해 마리아처럼 절대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말라고 경계를 했습니다목녀에게는 절대로 내가 그날 일하러 가지 않고 딸과 함께 있었으면 딸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지 말고목자에게는 내가 좀 더 다정한 아빠가 되어 딸의 고민을 들어주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라고 안타까워하지 말고오빠인 아들에게는 내가 동생이 어릴 적에는 가깝게 지냈는데 왜 동생이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모르고 무심했나하고 후회하지도 말라고 권고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날을 아시기에 아이의 마음이 모진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도 여려 더 많은 고통을 겪을 것과 또 목녀가 계속하여 끝없이 이 아이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허락하신 것이라고 하면서우리가 할 일은 천국에서 이 딸을 만날 때 이 아이의 몫까지 더욱 주님과 영혼을 위해 살다가

당당하게 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데려가실 때에 우리는 다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일 뿐이지 왜 그렇게 하셨느냐고

원망할 수 없고 오직 지난 15년 동안 딸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나도 2년 전 그토록 사랑했던 누님을 떠나보내며 통곡하였고 하늘도 우울하고 세상도 어두워 보였는데어느 날 주님의 위로가 임하자 저수지의 물이 빠져나가듯 갑자기 마음 바닥에서 슬픔이 빠져나가면서

누님이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늘 내 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주님 안에서 진정 사랑했던 사람들은 죽음으로 잠시 헤어진다 해도 늘 같이 있는 것이며

삶과 죽음을 넘어 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목녀도 이 슬픔이 지나간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곁의 사람에게 말하듯 딸과 말을 주고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죽음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했듯이 저는 죽음의 독침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절망과 슬픔인데 죽음을 이긴 주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는 바울처럼 죽음을 향해 당당하게 죽음아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선언할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설교 후에 평생 동안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친구이자 동반자를 잃어버리고 살아야 할 목녀를 위해,

한 평생 인생의 기쁘고 슬픈 일을 함께 나눌 유일한 혈육 동생을 잃은 오빠를 위해그리고 달려와 안기며 수고로운 삶의 위로와 기쁨이 될 사랑스러운 딸을 떠나보낸 외로울 아빠를 위해 울며 기도했습니다.

목녀는 예배 후 처음으로 그 동안 계속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백하기를 예배 도중 정말 감당할 수 없이

온 몸과 마음을 휘감았던 슬픔이 썰물처럼 물러가는 것을 느꼈다고 하면서 말씀 하나하나가 실체가 되어 슬픔을 몰아내고 마음에 그대로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자기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울고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조금씩 나누어 가면서 자신의 슬픔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모든 성도에게도 같은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임하여우리가 모두 주님 안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하나이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삶보다도 천국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신비한

체험을 하면서 모두의 신앙이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화장터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의 육신이 한 줌 재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유족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육신을 처리하는 곳에 맡기고 유족들을 위하여 마련된 방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아이의 육신이 한 줌 재로 변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날에 명하시면 그의

육신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들이 모여 다시 부활하게 되며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이 아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기에 절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예배 후 성도들은 돌아가며 아이에 대한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한 목녀는 아이가 어렸을 때에 같은 골목에서 살았기에 자주 집으로 놀러왔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남편이 이젠 이 골목이 어두워지겠네.”하며 쓸쓸하게 말했다고 하면서 아이는 항상 주위를

밝게 하는 명랑한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주일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친 교사인 자매는 아이가 항상 예수님을 사랑했으며 특히 아빠를 위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엄마인 목녀는 딸이 너무나 엄마의 마음을 잘 알아주었으며 전화를 하면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라는 소리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조문차 오신 담임 선생님이 딸은 책임감이 강하여 시킨 일은 반드시 완수하는

아이였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저도 딸 한나가 아이를 너무 귀여워 하여 대학 강의실에 데려갈 정도였으며 아이를 본 한나의

대학 친구들이 아이를 보려고 집으로 찾아올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나누었습니다.

 

아이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성도와 가족들의 표정을 밝았으며 가끔씩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정교회와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절망과 슬픔이 기쁨과 소망으로 변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이틀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불신자 친척들은 목녀를 보고 네가 다니는 교회는 좋은 교회이며 너는 정말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목녀는 그 주일 변함없이 은혜롭게 찬양을 인도했으며 대표기도를 맡은 목자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가끔씩 슬픔이 찾아왔지만 목녀는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자신도 어쩌면 슬픔을 이기지 못해 딸의 뒤를 따라갔을 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틈틈이 집사람과 목녀들이 며칠씩 속초나 제주도 등으로 이 목녀를 위한 위로 여행도 다녀옵니다.

온 교회는 이 아이는 이제 이 목녀 만의 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딸이 되었다고 하며이 아이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삶을 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영혼들과 함께 이 아이 앞에 서서 너로 인해 이 사람들이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말하자고 합니다.

 

며칠 후 저는 기도 중 아이가 천국에서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며, 집사람은 아이가 유년

주일학교에서처럼 율동을 하며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찬양을 했으며, 몇 주 후에 목녀는 예배시에 아이가 예수님과 함께 강단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후에 아이의 방에서 발견 된 유서에는 이글을 읽을 때쯤이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며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엄마 아빠에 대한 감사와 결코 자책하지 말라는 당부가 쓰여 있었습니다. 

아이는 우울증에 걸렸어도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염려를 잃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 기회를 통해 우울증의 심각성을 알고 대비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